치마 밑단의 풍경Hem deco

<VOGUE> 2013년 03월호

이것은 치마에 관한 얘기다. 그렇다고 길이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솔깃한 정보는 없다. 어느 때보다 변화무쌍한치마 밑단의 풍경. 더 이상 길이에 집착하지 마시라!

내 여자는 절대 안 되지만 다른 여자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하는 것?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쇼핑몰에서 남자 356명과 여자 244명에게 치마 길이에 대해 물었다. 먼저 남자에게. 당신의 여자에게 허용되는 길이는? 무릎 위 10~15cm가 46%, 무릎 위 20cm 이상이 8%였으며, 니렝스 스커트 14%, 롱스커트 7%, 미디 4%가 뒤를 이었다. 남의 여자라면? 초미니 50%, 미니 27%, 니렝스 11%, 롱 8%, 미디 5%. 공신력 있는 조사는 아니지만, 치마에 관한 젊은 남자들의 속마음을 엿 볼 수 있었다. 스커트의 주체인 여자에게도 그건 머리 길이만큼 중요하다. 그렇다고 스커트가 사이즈에서 길이에 맞춰 구분되진 않았다. 하지만 미니, 미디, 맥시 등은 유행을 정하는 지표였다. 가로 폭(플레어, 타이트 등등)도 관건이긴 하나 길이만큼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자와 가위를 들고 바닥에서 위로 얼마나 올라오는지 고민하는 대신, 밑단을 접고 자르고 풀고 꾸미는 데 공을 들였다. 일명 ‘헴 데코’ 시즌! 스커트보다 팬츠 위주였던 발렌시아가 무대가 이번 시즌만큼 팬츠가 얌전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대신 스커트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았다. 리야 케베데가 입은 플라멩코 스커트 한 벌만 해도 몇 가지 트렌드가 있었다. 흑백, 러플, 언밸런스 커팅! 몇 가지 헴 데코 옵션이 더 있었다. 사각 손수건의 정중앙을 콕 집어 위로 들어올렸을 때 아래로 축 늘어지는 바로 그 형태의 행커치프 스커트, 종이접기 하다 비뚤어져 잘못 접은 듯한 플리츠 스커트, 핑킹 가위로 자르고 펀칭기로 구멍까지 뚫은 식탁보 스커트, 물결무늬 곡선으로 잘린 조각들을 이어 붙인 기하학 스커트 등등. 발렌시아가에서 이토록 다채로운 스커트, 그것도 공작 시간 뺨치게 다양한 헴라인들을 볼 수 있다니!

트렌드를 결정하는 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발렌시아가가 이쯤 된다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또 얼만큼 헴 데코에 몰두했을까. 새 디자이너 덕분에 유행의 근원이자 핵심이 된 디올과 생 로랑도 스커트 밑단을 가만 두지 않았다. 여기에 지방시까지 합세하자 앞과 뒤, 좌우 길이가 다른 헴라인들이 판을 쳤다. 리틀 블랙 쇼츠 위에 입은 디올의 개나리색 미니 드레스는 한쪽으로 물 흐르듯 비대칭으로 디자인돼 더없이 율동감 있게 보였다. 생 로랑을 위해 에디 슬리먼도 베티 카트루스가 입었던 블랙 드레스를 복각하며 하나의 변화에 주목했다. 앞뒤 길이가 현격히 차이 나게 디자인한 것. 그래서 뒤에서 보면 롱 드레스, 앞에서 보면 초미니 드레스!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역시 비슷한 접근으로 앞뒤가 다른 스커트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티시에겐 총 세 벌의 스커트가 필요했다. 기본형 니렝스 스커트를 입은 뒤 그보다 살짝 긴 앞치마 같은 옷감을 앞에 달고, 뒤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풀린 듯 바닥에 질질 끌리도록 패널을 덧댔다. 이런 스커트들을 주중의 사무실에서 입고 일하기엔 골칫거리다. 치맛자락이 회전의자에 끼기라도 하면! 가령 당신이 시상식에 수상하러 가거나 간단한 파티에서 돋보이고 싶을 때라면 또 모를까.
또 하나의 헴 데코를 들자면? 평소보다 신중하게 M 스펠을 눈여겨 보시길. 패션에서 M이라고 치면, 스몰이나 라지가 아닌 M 사이즈 스커트를 입는 여자? 설마 헤어밴드 할 때 거슬리던 M자형 탈모? 둘 다 아니다. 그건 커팅에 관한 얘기다. M자형 슬릿을 말하는 것. 다리 양쪽에 병렬 트임을 넣은 스커트 차림의 여자와 마주쳤다고 치자. 스커트 모양이 M자형으로 보이는 식이다. 지방시와 로베르토 카발리 등이 재단한 M 슬릿 스커트는 가끔 무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자의 계절 봄에 남자들 사이에서 치맛바람 한번 일으키고 싶다면 이만한 게 없다. 이 외에 자로 잰 듯한 재단 실력이 일품인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는 무릎에서 사선으로 잘린 스커트로 모던 글래머를 보여줬다. 도톰하고 윤기 있는 더치스 새틴을 다림질 하지 않고 슬쩍 접어 양감이 살아 있는 오리가미 미니스커트도 프라다 무대에 올라왔다. 시접 처리를 하지 않고 올이 너덜너덜 풀리도록 방치한 셀린 역시 미완성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물론 아방가르드도 아방가르드 나름. 셀린처럼 현실적인 아방가르드는 백주대낮에 입고 돌아다녀도 되지만, 꼼데가르쏭의 조형적인 스커트는 예술가들의 밤을 위해 양보하시길! 시즌 트렌드에 깜빡 숨 너머 가는 체질이라면, 어깨는 럭비 선수처럼 비대하고 U자형으로 잘린 발맹을 추천한다. 그러니 이번 시즌 스커트를 고를 땐 무릎과 발목을 기점으로 얼마나 오르락내리락 하는지에 연연하지 마시길! 보시다시피 많은 디자이너들이 밑단 꾸미기에 열중이니까. 단,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갖고 있던 스커트 밑단을 뜯어 셀린처럼 리폼하겠다고 공들이거나, 멀쩡한 스커트에 양쪽 트임을 넣어 M 실루엣에 도전하겠다며 수선집에 맡겨 멀쩡한 옷을 망치진 마시라. 여기 소개된 ‘헴 데코’ 스커트 가운데 한 벌만 집중 공략하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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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아트 디자이너 - 일러스트 / 이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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