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으로 간 게이

<VOGUE> 2013년 03월호

홍석천은 한국 토크쇼에서 유일하게 19금 토크와 동성애에 대해 프리패스를 가졌다. 게이이기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게이가 말하는 게이의 삶은 지금 TV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새롭고 섹시한 소재다.

강호동에게 권한다. KBS <달빛 프린스>에 홍석천을 섭외하자. MBC <라디오 스타>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긴 했지만, 이서진이나 김수로같은 스트레이트 남자 연예인을 초대하는 것보다는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한국 토크쇼에서 “여기 있는 남자들 다 내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할 수 있고, “너 엎드려”라고 한말에 MC가 “형님이 엎드리라고 하면 이상해요”라고 받아쳐도 크게 웃을 수 있는 생물학적 남자는 홍석천밖에 없다.

홍석천은 한국 토크쇼에서 유일하게 19금 토크와 동성애에 대해 프리패스를 가졌다. 게이이기 때문에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게이이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잘생긴 남자 연예인을 상대로 야한 농담을 던지고, 게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미디어는 그를 통해 시청자들이 알고 싶어 했던 금기들을 슬쩍슬쩍 넘어간다. 더 야하고, 더 거침없고, 더 드라마틱하다. 미디어에서 게이와 동성애 자체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게이가 말하는 게이의 삶은 지금 TV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새롭고 섹시한 소재다. 게다가 시장은 만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10대 시절 팬픽과 야오이물로 ‘동성애자=하늘에서 내려온 미남’이라 상상했던 여성들은 20대에 <섹스 앤 더 시티>와 <퀴어 애즈 포크>를 보며 편안한 게이 친구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어떤 남자나 어떤 기독교인은 게이가 TV에 나오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여자들은 게이 리얼리티쇼 <퀴어 아이>에 나오는 게이가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랐다. 잘생긴 다섯 게이가 여성 신청자의 남자 친구를 멋지게 메이크오버시킨다. 여성은 남자 친구의 센스를 업그레이드시켜서 좋고, 방송 내내 잘생기고 섬세한 취향의 남자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좋고, 그럼에도 남자 친구가 질투하거나 화낼 수 없어서 좋다.

게이 리얼리티쇼임에도 불구하고 <퀴어 아이>가 한국화된 것은 게이, 또는 게이라는 또 다른 남성이 주는 매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준다. 과거 방영됐던 SBS <체인징유>는 표절 시비까지 일만큼 <퀴어 아이> 포맷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세련된 남자가 촌스러운 남성을 의뢰인 여성의 기대대로 바꿔주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판타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체인징 유>의 이성애자 남성들은 <퀴어 아이>의 게이들만큼 멋지진 못했다. 대신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케이블 TV에서 ‘패피'를 자처하는 세련된 남자들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여성 이상으로 옷을 잘 입고, 화술도 뛰어난 그 남자들 말이다.

TV에서 남성이 여성의 패션에 대해 말할 때쯤 한국에서도 19금 농담을 던지는 게이가 등장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홀로 욕망을 삼키거나, 완벽한 취향과 센스를 가진 꽃미남도 아닌 그냥 게이 말이다. 커밍아웃하고 토크쇼를 진행하는 미국의 레즈비언 연예인 앨렌 드제너러스만큼은 아니지만, 홍석천은 꽃 같은 외모와 섬세한 취향 대신 게이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로 대중의 흥미를 끈다. tvN <코미디 빅 리그>에서는 리마리오와 함께 ‘레드버터’를 결성했다. 유치원 아이로 분장한 개그맨 앞에서 온갖 남자들을 품평하며 게이 코미디를 하는 것은 한국에서 게이를 수용하는 방식이 또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김태희가 출연하는 사극 <장옥정>에 캐스팅될 뻔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흥미롭다. 커밍아웃 전, 그는 남자 취급 못 받는 남자의 캐릭터를 가졌었다. 하지만 <장옥정>에서 그가 물망에 올랐던 배역은 조선시대 파티 플래너였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구준엽 다음으로 잘생긴 민머리 연예인인 그는 실제 이태원의 잘나가는 레스토랑 주인이다.

tvN 에서 활약 중인 연극배우 출신의 김민교는 콧수염을 기른 ‘청순 게이’ 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여장 전문, 게이 전문 배우로 급부상했지만 사실 그는 이성애자다. MBC <무릎팍 도사>에서는 성전환을 선택한 <매트릭스> 감독 라나 워쇼스키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라나 워쇼스키의 용기가 아니다. 정확히는 지난 10여 년 동안 <퀴어 애즈 포크>와 <섹스 앤 더 시티>, 그리고 <퀴어아이> <엘 워드>를 방송해온 미디어와, 그 방송들을 즐긴 꽤 많은 여성 시청자들과,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시 꽤 많을 성적 소수자들의 승리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적 소수자에 대해 관대해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일례로 트랜스젠더 토크쇼 는 제대로 방송도 하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다. 하리수는 끊임없이 성 정체성에 대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게이가 남자에 대한 야한 농담을 하는 것은 용인된다. 재능 있는 성전환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 것에는 감동할 수도 있다. 단, 아직은 거기까지다. TV에 나오는 대부분의 게이는 여전히 여성스럽고, 이성애자 남자들에게 애써 관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게이지만 남자다울 때는 남자다운 캐릭터는 여전히 금기에 가깝다. 터프하거나, 엄청나게 잘생기지 않았더라도 남자가 보기에도 멋있는 (커밍아웃한)게이가 TV 토크쇼에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게이는 정말로 이성애자들과 편한 토크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홍석천에게 ‘게이 이야기’를 신기하게 듣는 수밖에.
my style0
CREDIT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미혜
아트 디자이너 - ILLUSTRATION: HONG SEUNG PYO
기타 - 글 / 강명석(〈10아시아〉 편집장)
COPYRIGHT
STYLE.COM 내 모든 콘텐츠의 소유는 두산 매거진에 있으며 본 기사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분별한 사용으로 발생되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close
내가 본 기사
추천기사
인기기사
베스트 스타일보드
  • 50인의 선택 - II ...
    1
    avoir7950인의 선택 - II ...2014.11.21